한미경 선교사의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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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맞이하며 생각을 해 보니, 이만큼 오도록 인도하여 주신 주님께 감사할 뿐이다. 그 동안에 이루어 주신 사역들을 생각해 본다. 의료 사역, 학교 사역, 무숙자 사역, 어린이 돌봄 사역, 교회 협력 사역이 있다. 한편 아내 한미경 선교사가 지난 2년 동안 돌보아 왔던 Young Life (영 라이프) 사역은 내가 직접 연관된 사역이 아니라고 후원자들과의 나눔에 많이 소홀했다. 이번 달에는 에는 그 사역에 대해서 나누어 보려 한다. 이곳에 도착했던 2005년 7월 후에 한미경 선교사이 가장 가깝게 지냈던 친구는 리타 그로우네 (Rita Groene)라는 기독교 여성이었다. 우리 가정과 같은 시기에 그로우네 가정은 미국 대사관의 법률 고문으로 니카라과에 오게 되어 남편과 4 자녀가 함께 도착했다. 그 후 콜롬비아로 발령되기까지 2년 동안 가깝게 지낸 가정이다. 무엇보다도 한미경 선교사가 졸업한 ‘윌리암 엔 메리’라는 대학의 4년 선배가 되었던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고, 그 후에 알게 되었지만 신실한 신자였다는 것이 두 사람을 무척 가깝게 만들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놀라운 만남을 주선하신 것이다. 그 후에 선교적인 신앙의 자세를 지니고 있었던 리타와 함께 둘은 동역 할 수 있는 사역을 찾았다. 그리고 주위에 있었던 기독교 여성들과 함께 시작한 기도회 모임 후에 탄생한 것이 바로 영 라이프 (Young Life) 사역이다. 그래서 결국 1년의 준비 과정을 마치고 Young Life 사역이 마나구아에 지부를 갖게 되었고 첫 학교로 한미경 선교사가 교사로 섬기는 외국인 학교로 정해졌다. 영 라이프에 관해서는 www.younglife.org 를 살펴 보면 잘 알수 있지만,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938년에 텍사스에서 고등학교 청소년들에게 전도하기 위하여서 시작된 청소년 사역이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 이 사역이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50 나라에 1,000 여명의 사역자와 함께하는 청소년 사역 단체가 된 것이다...

단기 선교팀과 함께 한 여름을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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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기 선교팀과 함께 세우는 교회의 모습) 이제 8월을 마치면서 바쁘게 지냈던 여름을 돌아 살펴 본다. 방학을 맞이하여 찾아 준 선교팀을 맞이하여 함께 사역을 하느라고 바쁘게 지냈다. 그래도 3년을 지낸 베타랑(?) 선교사라고 올해는 예년 보다 많은 선교팀이 찾아 주셨다. 선교사라고 나를 믿어 주고 찾아 와 주신 선교팀과 보내 주신 교회와 목사님들께, 그리고 함께 동역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선교팀을 받으면서 오래 전에 우리 나라에 오셨던 선교사님들을 생각해 볼 때가 가끔 있었다. 그 때에는 교통 수단이라고는 화물 운송선 뿐이던 때이다. 한번 고국을 떠나면 몇 년이고 돌아 올 수 없었던 때고, 찾아 오는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던 때이다. 그나마 편지 한번 보내면 몇 달이라는 기간이 걸려야 답장이라고 겨우 받아 볼 수 있었던 때를 생각해 본다. 그 선교사님의 외로움은 어떠했을까? 부인 선교사님들의 외로움과 고통은 어떠했을까? 한국 기독교 유적지는 역사가 짧은 만큼 많지 않다. 많지 않은 유적지 중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 많은데, 그 중에 하나가 ‘지리산 선교사 수양관’라는 유서 깊은 곳이다. 지리산 깊숙한 곳에 선교사 수양관이 세워진 이유를 알면 우리 나라에 오셔서 복음을 전해 주신 선교사님들의 헌신과 희생과 고통을 조금은 느껴 볼 수 있다. 외국의 선교사들이 우리 한국 백성을 위하여 한국 땅에 와서 목숨을 바쳐가며 복음의 진보를 위하여 일했음을 증명하는 곳이다. 예전에 우리나라에는 여름철이 되면 학질과 말라리아, 그리고 이질과 같은 전염병이 돌았다. 그리고 이런 병으로부터 희생되어지는 선교사와 자녀들이 생겼고, 이 무서운 질병에 대해 선교사들이 세운 대책이 바로 지리산 선교사 수양관이다. 바로 그러한 전염성 질병으로부터 여름 동안 가족을 피신 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인적이 드문 지리산 깊은 산골을 택했던 것이다. ‘지리산 선교사 수양관’은 말이 수양관이지 사실은 죽음을 각고하고 들어 온 선교사들과 그 가정의 희생과 헌신을 증명하는...

Mercado Oriental 시장의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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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한미경 선교사의 블로그에서 글을 옮겼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금요일 새벽 2시 부터 시작한 불이 금요일 오후 5시나 되어서 끝났습니다. 아침 7시에 친구가 전화가 왔습니다. '너희 무숙자 사역장과 클리닉은 괞찮으냐?' 하는 질문에 심장이 잠시 중단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로 테레비를 틀고 보니 난리가 났더군요. 우리 사역장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Mercado Oriental이 타고 있었습니다. 무서운 불길이 하늘을 향해 타오르고 있었고, 까만 연기가 온 하늘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건들을 들고 뛰면서 소리 지르고 있었고, 소방관들과 경찰들이 이리 저리 뛰면서 불을 끌려고 애쓰는 장면들이 스쳐갔습니다. 우리 사역장과 똑같은 길가에 위치한 플라스틱 용기를 파는 가게에서 전선이 합선되어 새벽 2시에 시작된 불이 벌집처럼 붙어있는 1502 가구의 가게들을 15시간동안 다 태어 버렸습니다. Mercado Oriental 는 40년 된 중남미 에서 제일 큰 재래 시장입니다. 한 120 acres의 땅을 차지한 이 시장 안에 한 35,000 가구의 가게들이 따닥따닥 붙어있다고 합니다. 시장안의 길들이 너무 좁고 복잡해서 미국 시민권 자들은 미국 대사관에서 들어가지 못하게 금지구역이 될 만큼 위험한 그곳에 불이 났습니다. 한국에서만 보았던 땅을 치며 통곡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이 나라에서도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옆에서 돕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치면서 소리치며 울고있는 상점 주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신도 흘러나오는 눈물을 막지 못했습니다. 평생 모은 자신들의 재산이 하루 아침에 연기와 함께 사라진 그들의 앞에 정말 소망이 어디있을까 하면서 한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가난한 나라임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소방관들의 옷에는 도네이션을 준 미국 소도시들의 이름들이 적혀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소방차들도 없어 물이 이곳 저곳으로 세는 호스들를 가지고 불을 끌려고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울었습니다. 모든것...

배고픔에는 장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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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무척이나 바뻤던 한 달이었다. 육신적으로도 바쁘게 지냈지만, 마음이 더 바쁘게 느껴졌던 한 달이었다. 무엇보다도 의료 선교관을 시작하기 위한 보사부 허가를 위해서 바쁘게 지냈었다. 결국에는 허가없이 시작하는 경우가 되었다. 긴 이야기를 줄이자면 이렇다. 1년 6개월 전에 극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그리고 집권당의 중요한 공약 중에 세가지를 추린다면 다음과 같다. ‘범 국민 교육혜택, 범 국민 의료 혜택, 굶주림 퇴치’. 범 국민 의료 혜택을 개선하기 위해서 보사부의 모든 정책을 바꾸는 과정에 있기에 지난 6개월간 보사부의 행정이 마비된 상태라고 설명한다. 말하자면 좋은 의료 혜택을 위해서 현재 업 그레이드 하는 중이라 모든 행정을 중단하고 준비 중이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허가가 없어도 서류만 완벽하게 준비해서 제출한 후에는 진료는 시작할 수 있다’는 언질을 받았다. 어려운 준비 끝에 찾아가서 얻어낸 정보라 너무 허탈했고 속도 상했다. 하지만,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라고 생각된다. 시작해 보면 분명히 모자란 부분들이 드러날테니 말이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손해 되는 일을 허락하실 이유가 없다. 축복, 아니면 축복을 위한 연단, 그 둘 중에 하나가 분명하다. 현재, 세 가지 공약 중에서도 배고픔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식량의 가격이 너무 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식량 문제는 국제 산유 가격과 연관되어 있고, 국제 산유 가격은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가 공통적으로 함께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그렇기에 반드시 현정권이 책임져야 하는 문제는 아니지만, 현정권을 향한 국민들의 불만이 위험 수위에 올라와 있다. 사실이지, 미국과 같은 경제 대국에서는 식료품의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식사의 양을 줄이거나 끼니를 줄이는 경우는 아니다. 단지 메뉴에 차이가 생길 것이다. 일주일에 고기를 세번 먹었던 경우였다면 두 번이나 한 번으로 줄여야 하는 경우일 것이다. 물론 그 보다 어려운 경우도 없지 않겠지만, 일반적인 경우를 말하자면 그렇다....

여성 아동을 위한 선교 센터 계획안

다음의 글은 무숙자 선교관이 위치는 메르카도 오리엔탈 지역의 여성 및 아동을 위한 센터를 준비하며서 준비한 프로포설 (계획안)을 옮겨 보았습니다. Mercado Oriental’s Center for Women and Children Project I have been serving the homeless at Mercado Oriental, the commercial district of Managua, since 2005. It is the largest open market in Central America and is considered as one of the most dangerous area of Nicaragua. The U.S. Embassy prohibits its employees to enter the area. Many indicate that the life in the market is more than difficult. The area is permeated with those addicted to drugs and alcohol. Many are out of hope, out of love, and out of resources. They fill their emptiness with substances. Their choice of drug is industrial grade glue: It’s cheap and readily available. Women sell their body to earn whatever they can, from foods to a few dollars. The area lacks love and hope. Most are looking, looking, and looking without much success. These are the people whom our homeless center, el Centro Esperanza, serves. We have been here ...

만남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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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하심 속에 있다. 그리고 만남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은 서로를 향하여 흘러간다. 그래서 우리는 만남을 중요시 여겨야 하며, 만남을 잘 간수해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 중에서 만남을 통해서 주어지지 않은 축복이 있는가? 우리가 누리는 기쁨 중에 만남의 결과가 아닌 기쁨은 없다. 우리가 소유한 풍성함도 결국은 만남의 결과이다. 우리가 갖는 위로와 격로는 만남의 결과이다. 그리고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기에 언급하기 조차 어색하지만 그래도 다시 확인해 보고 싶은 진리가 있다. 우리 주님과의 만남이 모든 만남 중에 최고의 축복 됨이라는 사실이다. 나도 주님을 만난 후 변했던 것이고 그런 만남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서 먼 곳, 니카라과까지 와서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사들은 현지인들에게 하나님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중매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일년 반 전에 축복의 만남이 있었다. 하나님의 섭리 중에 엔리께 올테가라는 목사님을 만났다. 내가 찾아 나선 것도 아니고, 그 분이 먼저 찾아 오신 경우이기에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였다. 그리고 올테가 목사님과의 관계는 서로를 향한 존중과 인정, 그리고배려와 이해 속에서 아름답게 가꾸어져 갔다. 올해 1월에는 올테가 목사님을 중심으로 현지인 목회자 11명과 함께 목회자 협의회를 구성하는 결실을 맺었다. 이 목회자 협의회의 목표는 ‘상호 협력적인 관계 속에서 니카라과에 복음의 진보을 이루는 것’에 있다. 선교사 3년 차인 나에게 ‘상호 협력적 관계’이라는 표현에는 선교의 중요한 의미가 부여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니카라과 땅을 이곳 백성들에게 맡기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선교사는 그 일을 돕는 도우미의 역할을 위해서 이 땅에 부름을 받는 자들이다. 그래서 현지인 목회자들을 돕고 협력하는 관계 속에서 벗어나 선교를 해서는 안 된다. 조금 더 배웠다고 현지 교회의 전통과 목회자의 뜻을 무시하거나, 그들보다 재정적으로 더 힘이 있다고 그들 위에 군림하려는 자세는 도리어 복음의 진보를 방해...

Dr. John Doty - 의료 선교로 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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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John Doty 를 처음 만난 것은 ICF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라는 선교사들이 모이는 교회에서였다. 2005년 10월이었다. 선교지에 정착한지 얼마되지 않았던 때이었기에 기억이 뚜렸하다. 선교지에서는 장로교단과 연관되 있었던 미국 출신의 선교사가 극히 소수인 것이 현실이다. 미 장로교단에서 파송된 선교사도 있기는 하지만 거의가 신학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선교사들이기에 이렇게 신학적 보수에 속한 공동체와는 연관을 갖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실 선교지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는 큰 차이가 없으면 협력해야 하고 서로를 격려해야 하는 입장인데 말이다. 하여간 그런 상황에서 ‘장로교’라는 말이 그리웠던 때였다. 예배 중에 방문자 소개 순서였다. 미 장로교에서 온 팀을 소개하는데 너무 반가웠다. 예배 후에 무작정 다가가서 나 자신을 소개했다. 그 사람들도 어이가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어떤 사람이 그렇게 공격적으로 다가온다면 나라도 당황했을 것이다. ‘교단이 같다는 것이 뭐가 대단하다고 그까짓 끄나풀 가지고 이렇게 반가워하는 척하나… 다른 속샘이 있는 것 아니야…’ 어쩌면 그들의 마음에 경계심을 조장했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그런 내 쪽의 반가움과 그들의 경계심 속에서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Dr. John Doty 는 그 선교팀의 대표격이었다. 1995년(공산주의 체제에 있었을 때)부터 니카라과를 드나들며 의료를 통하여 교육을 통하여 복음과 사랑을 전했다. 말하자면 선교의 베타랑이라고 하겠다. 첫 만남에서 못내 반가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내년 3월에 다시 선교팀과 오는데 그 때 다시 만나자면서 헤어졌다. 나로서는 무척이나 섭섭했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예의 바른 신사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나의 이야기를 10분이상 들어 준 것만 해도 그의 입장에서는 큰 베품이었다고 생각된다. 사실인 즉, 처음 만난 동양인이 혼자서 묻지도 않는 대답을 스스...

협착한 길을 걷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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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3-14) 예수님은 일부러 좁은 길을 걸으신 분이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좁은 문을 찾아 가라고 말씀하신다. 미국에서 주님의 말씀대로 그런 삶을 산 사람이 있다.헨리 나우웬 박사다. 전에 목회했던 코네티컷의 뉴 헤이븐에 위치한 명문 예일 대학의 신학 대학원에서 교수 생활을 하셨다. 그리고 하버드 대학으로 옮기셔서 강의했던 유명한 영성 학자셨다. 그러던 그가 교수직을 사퇴하고 카나다에 있는 정신장애 교육 시설인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의 봉사원으로 자원하셨다 . 그리고 정신박약아 장애자들을 돌보며 살았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 기독교계가 흔들릴 정도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기자들이 찾아가서 동기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예수님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그 분이 걸으셨던 길을 걸어 보아야 합니다. 좁은 문, 험한 길을 걸어 보아야 합니다. 머리로만 성경을 이해하였는데 장애인들을 도우면서 몸으로 예수님을 이해해 보겠습니다” 좁은 문을 찾아 나서는 자들 중에 성경에서는 모세, 에스더, 그리고 바울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넓고 편한 곳에서 좁고 험한 곳으로 자원해서 찾아 나선 사람들이다. 반면에 , 세상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좁고 험한 곳에서 있는 사람들이 많다. 니카라과에 와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산다. 니카라과의 80프로 이상으로 선택이 아닌 운명적으로 좁고 험한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유엔의 통계로 볼 때 빈민 생활자에 속한다. 오늘 만난 아홉 살 된 소년은 그 중에 대표적이고 하겠다. 미국 북 버지니아 지역에서 찾아온 워싱톤 한인 교회의 선교팀은 함께 의료사역과 어린이 사역을 중심으로 일 주일을 함께 보냈다. 니카라과에서 가장 더운 지역이라고 하는 치난데가의 현지인 교회와 함께 사역을 했고 나머지 3일은 수도 마나구아에서 무숙자 선교관과 ...

아내 한미경 선교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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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한미경 선교사가 기록한 글을 옮긴 것이다. ( 니카라과는 12월 부터 2월 말까지의 날씨가 제일 환상적이다. 낮에는 한 88도, 밤에는 75도다. 물론 낮에는 아직도 해가 쨍쨍하기 때문에 덥다고 느끼지만,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옛날에 살던 코네티콧의 가을 날씨를 기억케 한다. 지금도 창문을 열고 그 앞에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보니, 선선한 바람을 통해 동부의 가을 날씨를 그리워 보게 한다. 지난 해를 생각하면서 머리속에 제일 많이 떠오르는 일이 있다. 단기선교팀들이 오셔서 제일 많이 하시는 말씀이다: 어떻게 2년 반동안 이렇게 많은 사역을 하셨나 하면서 감탄하시는 말씀이시다. 그런 말씀을 들으면 정말 기분이 좋다. 물론 우리를 칭찬하시는 말도 되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은혜를 체험하시는 말씀이기도 해서 그렇다. 그래서 그 말을 들으면 더욱더 마음이 따뜻해진다. 우리의 경우 나이가 들어서 선교지로 와서 하나님도 마음이 바쁘셨는지 몰라도, 많은 사역을 열어 주셨고 길을 인도해 주셨다. 그리고 필요한 동역자들과 물질을 필요에 따라 보내주시면서 길을 활짝 열어주셨다. 목사님이 기도하는 제목들마다 들어주셨다. 신기했다. 믿는자로써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당연이 주시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신기했다. 이제 몇 주면 다 끝날 의료 센타를 생각하면 더욱 더 신기하다. 우리 무숙자 센터 옆에 붙어 있는 그 빌딩을 구입해서 의료 센타로 짓기 시작한것이 이제 4개월이 되어간다. 너무나 이쁘게 지어지고 있다. 그곳에 오는 환자들이 그곳을 마음 편하게 찾아와 필요한 치료를 받고 가는 모습을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그려진다. 그러면서 그런 클리닉이 니카라과 곳곳 마다 생기기를 기도해본다. 그런 병원들이 크고 커서 한국에있는 세브란스 병원이 되기를 바란다. 신나는 일이다. 생각만해도. 아이들이 무척컸다. 키도 컸지만, 영적으로도 많이 컸다. 자기들끼리 한인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과 많이 가까워 졌다. 교회 봉사를 통하여 이런 저런 어린 모습들이 ...

물에서 포도주의 체험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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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도를 새롭게 맞이 하면서 기도 가운데 계획해 본다. 어떤 사역을 새롭게 시작 할 것이며, 어떤 사역에 중점을 둘 것이고, 정리해야 한다면 무엇을 정리해야 할 것인가? 이렇게 올해에 할 일을 생각하며 흥분해 보기도 하고, 걱정을 하기도 하며, 감사해 하면서 새해의 첫 달을 지내고 있다. 기도 가운데 주님께서 감동을 주신 말씀은 요한 복음 2장의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던 혼인 잔치의 사건이다. 그러면서 언제부터인가 이런 기도를 한다. “평범한 물이 아니라 진한 포도주를 맛보는 2008년이 되게 하소서” 굳이 부언해 본다면 ‘주님의 영광과 능력을 체험하는 2008년’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 제목이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던 주님의 능력을 직접 체험했던 제자들과 같은 고백이 있기를 바라는 기도다. “그의 영광을 나타나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느니라”(2장 11절) 그 때까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제자들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을 제대로 알게 되고 믿게 되었다. 가나안의 포도주 사건과 기적을 통하여 주님을 새로운 차원으로 알게 되는 은혜를 입었던 것이다. 올해에는 제자들이 체험했던 은혜를 기대해 본다.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깊은 기도 가운데 얻어지는 주님과의 교제의 중요성도 말할 나위없다. 반면에 시편 기자와 같은 ‘맛보아 알게 하소서’ 라는 고백은 주님과 동행하며 체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라 하겠다. ‘사람을 여행을 함께 해 보면 안다’는 속담이 있다. 즉 격어봐야 안다는 이야기다. 나도 주님과 함께 여행하듯 주님을 격으면서 알아가는 은혜를 기대해 본다. 지난 2년 반동안 체험했던 주님의 인도하심, 동행하심이 놀랍다.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은혜 가운데 지냈다. 좋은 것을 가져 보면 더욱 갖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고 싶은 마음을 욕심이라고 말한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욕심을 내보련다. ‘더욱 많은 은...

2007년 성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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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후원자 여러분들에게, 성탄을 맞이 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벌써 주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을 눈앞에 두고 지난 일년을 정리해 보며 다시 감사의 감격에 젖어 봅니다. 겨울이라 하지만 아직도 낮 기온이 90도 가까이 되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의 케롤을 들으면서도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느끼기기가 조금 힘든 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일년 동안 은혜 가운데 돌보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 볼 때, 기도로 후원으로 함께 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7년에 저희 가족에게 있었던 일들을 간단하게 나마 나누기를 원합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나의 생각과 계획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했던 2007년이었습니다. 매주 1300명의 무숙자들에게 한끼의 식사를 제공한 것을 비롯해서, 올해에는 특별히 사역관 지역 근처에서 지내는 아동들을 돌보며 그들에게 필요한 사랑과 관심을 주는 아동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음은 저에게 특별한 기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와 함께 무숙자 선교관 옆에 의료 선교관 건물을 구입하여 공사를 시작하게 됨도 주님의 은혜이고 기도의 응답입니다. 학교 사역에서 또한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작년에 160 여명의 학생이 220명으로 증가한 것과 중고등학교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고백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한인 교회들과 단기 선교팀들의 도움으로 치난데가 지역에 두 교회를 협력 건축 할 수 있었던 것도 저에게는 큰 보람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돌아 볼 때, 올해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더욱 뚜렷하게 체험하였고, 기도의 응답이 더욱 정확하였던 것에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우리 집사람 한미경 선교사는 올해에도 꾸준히 주어진 사역을 잘 감당하며 한 해를 감사함으로 지냈습니다. 올해에도 맡은 20명의 유치원 아이들을 정성과 사랑으로 가르치고 있어서 부모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얻는 교사로 인정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학교의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

11월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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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 되면 하얄리야 기독교 학교의 책임자로서 두 가지 중요한 일을 치룬다. 우선, 장로교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행사를 준비해야 한다. 졸업식이다. 배움의 업을 마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고, 새로운 영역으로 옮기어 계속된다는 기대가 넘치는 행사이다. 학부형들로부터 지난 일년간 위임 받았던 우리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책임을 큰 탈없이 마쳤다. 이 때쯔음 되면 안도감의 감사가 절로 나온다. 올해에는 더욱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반성도 해 본다. 몇 가지 큰 일들이 있었지만 이만하기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특히 두 번의 무장 강도 사건 속에서도 아무도 다치지 않게 지켜주신 주님의 보호하심에 감사를 드린다. 반면에 나를 영적으로 많이 어렵게 했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동네 아이의 유괴 살인 사건이었다. 동네에서 그래도 조금 잘 산다는 가정의 아이가 우리 학교에 다닌다. 그 아이를 유괴하여 돈을 요구하려했던 유괴범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실수(?)로 정작 지목했던 아이가 아닌 동네의 다른 아이를 유괴한 것이다. 다른 아이의 부모는 찟어지게 가난하였고, 결국 요구한 돈을 지불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가정의 이 아이는 살해되어서 온 나라가 잠시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그리고 학교 뒷마당에 내다 버려져서 우리 학교는 또 다시 곤욕을 치루었다. 무슨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사건이었다. 그 때에 요구했던 금액이 현찰 이만 코르도바였다고 한다. 환율이 18.50 대 1 정도였으니 미국 달라로 환산하면 1000불이 조금 넘는 돈으로 계산이 나온다. 슬픔과 괴로움 가운데에서도 그래도 조금의 위로가 되었던 것은 영문도 모르고 세상을 달리한 아이가 우리 학교에 적을 두고 있지 않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안도감은 잠시였고 그런 이기적인 생각을 가졌던 자체를 괴로와 했던 기억이 아직도 살아서 나의 아픔이 되곤 한다. 그 아이의 삶이 성인이 되어서 불행했을 수도 있고 행복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 살아 보지 못하고 단 돈...

배 부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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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국의 어느 대학 총장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분은 육이오 전쟁 이후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구두통을 메고 하루 벌이를 하여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어떻게 운(?)이 좋아서 선교사의 눈에 들게 되었고, 그런 인연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고, 결국 공부도 하게 되고, 나중에는 유학까지도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선교사님을 만나게 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보살피심이었고, 그 만남을 시작으로 자신의 인생에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하면서 만남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큰 축복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신 글을 감동 깊게 읽은 적이 있었다. 무숙자 사역관에도 가끔 구두통을 메고 밥벌이가 잘 되지 않아서 찾아 오는 아이들이 있다. 끼니는 때어야 할 것이기에 돈 없이도 먹을 수 있는 우리 무숙자 선교관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당연하다. 그들에게 섞여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매일 30명 이상의 아이들이 배고픔을 달려면서 줄을 서 있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언제부터인지 그들의 배고픈 배를 채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걱정이 앞섰다. 어쩌면 두려움이라는 것이 더 솔직한 심정이다. 저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다면 언젠가는 이 길바닥에서 본드 병을 입에 물고 나타날 것이 불보듯 하기 때문이다. 그 때에 누구를 탓할 것인가? 이 비러먹을 사회 구조를 탓할 것인가? 아니면 무책임한 부모들을 탓할 것인가? 아니면 나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인가? 이곳에 세워진 선교관을 통해서 마약 중독자, 술 중독자, 무숙자, 창녀들에게 한끼의 식사를 나누며 그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곳에 드나드는 아이들이 그들과 같이 되는 것을 미리 방지하는 것 또한 중요한 사역이고 나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구상하기 시작한 것이 이곳의 아이들을 위한 아동 사역이다. 이 아이들을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돌보아 주자는 생각뿐이다. 말씀처...

단기 선교를 마치고 - 마커스 리웅

Back at home. Comfortable. Running water, electricity, no longer a need for heavy bug spray and sunscreen. Comfortable. Tomorrow I will not need to wake up to a day of body breaking labor under 90 degree sun rays and 95 percent humidity. No drenching sweat. My jeans do not stick to me like a wet napkin. No cement in my hair, blisters on the palms of my hand, and dirt blackening my body. When I am thirsty, I will drink, and when I am hungry, I will eat. I have the leisure to turn on my TV or browse the internet when I am bored. I watch sports, food networks and sitcoms. Just days ago, I was watching the rain soak a newly cemented wall in a homeless clinic and dirt loosened, to floor a church, turn into mud. Just yesterday I was watching a dear friend wash the feet of a drug addict. My team and I spent our first days in Managua, Nicaragua. Later in the week we went to Chinandega, and returned to Managua for our final days. I could sit here and try to find thesaurus-insp...

하나님을 체험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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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6) 한달 전 쯤해서는 지역의 의료 선교사 노어 설커 (Dr. Nour Sirker)라는 분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급하게 울리는 전화를 받으면서 오랫만에 전화 하셨다고 생각했다. 닥터 노어는 미국에서 의료 훈련을 받은 후 니카라과가 민주주의로 돌아서던 1990 초에 복음의 열정으로 불태우며 이곳에 들어 오신 분이다. 벌써 60세를 바라보는 닥터 노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그 열정이 전염 되는 듯하다. 그 분의 삶과 마음뿐 아니라 서두르는 듯한 그의 말투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분과의 대화는 늘 나 자신을 돌아 보게 한다. 나에게도 그러한 열정을 가지고 15년이 지나도 한결같이 주님을 섬길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분은 말도 길게 하지 않는다. 그는 말을 아끼신다. 할 말만 하면 끝이다. 상대방이 그의 침묵에 거북스러워해도 그만이다. 그 날도 짧게 우리의 대화가 끝났다. ‘무숙자 사역은 어떠냐?’ ‘좋다’ ‘아직도 의료 사역에 관심이 있냐?’ ‘그렇다’ ‘그러면 나에게 의료 테이블이 하나가 여유로 있는데 원하느냐?’ ‘그렇다’ ‘그럼 트럭을 준비해서 와라’ 그렇게 해서 닥터 노어의 의료 선교관으로부터 진료의자를 하나 얻었다. 의료 선교관이라기 보다는 수술실도 5개나 준비되어 있는 훌륭한 병원이다. 고맙다고 전화를 했더니 원하면 치과 진료 의자와 장비도 준비되어 있다고 부언해 주신다. 그리고는 주일이었다. 예배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커피집에 들렀다. 커피집 소파에 앉아 있는 어떤 노인네와 집사람이 대화를 나눈다. 처음 뵙는 분인데 대화의 길이가 짧지 않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의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수도 워싱톤 디씨에서 성공적으로 의사 생활을 하시다 은퇴하신 이비인후과 의사시다. 닥터 코옌은 벌써부터 니카라과의 무료 진료소에서 봉사를 해 오셨다. 우리가 관심...

단기 선교팀을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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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0:5 “ 우리 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 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 루어 주시기 를 원하노라 ” ( 단기 선교팀의 청소년들이 기도로 사역을 감당하는 모습 ) 7 월과 8 월은 이곳의 선교사님들에게 바쁜 기간으로 알려져 있다 . 미국에서 방학기간이고 휴가철이다 보니까 단기 선교팀들이 많이 들리기 때문이다 . 선교팀이 들어온다고 결정이 되면 선교사님들은 은혜로운 단기 선교를 위한 사전의 준비로 도착하기 전부터 바쁘다 . 그리고 도착한 후에는 선교팀을 돌보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무척이나 바쁜 시간을 지내게 된다 . 미국에서 목회 할 때에는 선교사의 입장에서 단기선교를 볼 수 없었다 . 그렇기에 선교사에게 주어지는 단기 선교의 유익에 대해서 알 길이 없었다 . 오히려 유익이 아니라 해나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적도 있다 . 그와 함께 그렇게 많은 재정을 드릴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질문도 던져 보았다 . 물론 단기선교를 다녀온 교회와 성도가 은혜를 받으니 교회 입장에서는 불평할 것이 없다 . 올해 들어서 몇몇 교회에서 관심을 가지고 나의 사역을 방문해 주기 시작했다 . 여름 동안 세 교회의 단기 선교팀이 방문하여 선교 사역을 도왔다 . 노스 케롤라이나의 그린스보로 한인 제일 장로 교회 , 엘 에이의 새 생명 오아시스 교회 , 뉴욕의 알바니 연합 감리 교회에서 찾아 주셨다 . 선교팀들과 함께 지낸 후에 생각을 정리해 보면서 몇 가지를 적어 본다 . 사실 피곤하다 . 모든 신경을 집중하여서 선교팀을 돌봐야 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