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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정헌택 장로님을 보내며

장로님의 소천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정헌택 장로님의 먼저 떠나심은 슬픔이고 아픔이고 아쉬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왜?’라는 답이 없는 질문을 많이 올렸습니다. 언제가는 누구나 거쳐 가야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떠나셨다고 하니 혼돈스러워졌습니다. 그러던 중 죽음에 대한 어떤 시를 읽었습니다. 내용은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항구에 아름다운 한 척의 배가 정착되어 있었다. 이제 출항의 시간이 되어서 배는 항구를 떠났다. 멀리 멀리 떠나 가고 있었다. 그렇게 아름답만 보이던 배가 작아지고 작아지면서 결국 바다와 하늘이 닿는 그 곳으로 다가 갔다. 그리고는 하늘 끝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사라진 배를 보고 있던 사람이 말했다. “이제 사라졌구나!” 그 옆에 사람이 말했다. “사라졌다니요?” 그리고는 설명했다. “사라진 것은 당신의 눈에서만 사라진 것입니다. 사라지는 그 순간, 반대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에게는 나타나는 것죠.” 죽음이란 바로 그런 것이죠. 저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분에게는 나타나는것이 죽음이죠.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쓰셨나 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사랑하는 고 정헌택 장로님의 죽음이 바로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경건한 성도가 오는 귀중한 시간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정헌택장로님은 거룩하신 분이었습니다. 걷는 모습과 몸가짐이 거룩해서가 아닙니다. 점잔케 목소리를 내리고 말하는 외적인 거룩함도 아닙니다. 가끔 멋진 정장을 하고 나타나실 때는 파마라도 하신 것같은 굵은 곱슬 머리가 어우려져 무슨 영화 배우가 나타나셨나 할 정도로 멋도 부리는 분이었습니다. 말씀 하실 때에는 생각같이 빨리 입이 따라 주지 않으셔서 그러신지 가끔 더듬 거리시기도 하셨습니다. 뭐가 그리 바쁘신지 성가대에서 주일 예배에 들어가실 때의 걸음도 제일 빠르셨습니다. 외적인 거룩한 모습은 별로 찾아 보기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