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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얄리야 기독교 중고등학교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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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립보서 1:6) <--- (중고등학교 학생들 입학 예배 후 찍은 사진) 사람들은 현실을 보고 탄식하는 말을 많이 한다. 현실에서는 희망의 가락 조차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잘못 되었고, 모든 것이 문제 투성이다. 잘못되어도 이렇게 잘못 될 수가 없다. 세상이 모두 자신을 대적하는 것같다. 도데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한숨과 함께 절로 나온다.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이 걱정과 불안과 두려움과 상처 뿐이다. 때문에 당연히 기뻐해야 할 일을 보면서도 기쁨이 없다. 남의 기쁨은 고사하고, 자신의 기쁨 조차도 누리지 못할 정도로 기쁨을 잃었다. ‘기쁨을 잃었다기 보다는 기쁨을 빼앗겼다’ 라고 표현하는 편이 도리어 옳다. 마찬가지로 웃어야 하는데 웃을 수 없다.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사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변화를 시도한다. 외부적인 것을 다 바꾸어 본다. 그러도 내면의 변화는 찾아 오지 않는다. 결국 허탈감만 더 크게 자리를 잡는다. 신앙은 이러한 관점을 탈피하는 것이다. 삶의 과정 속에 당연히 발견되는 문제점과 절망적인 것만 보는 관점을 벗어 버린다. 그렇다고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현실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눈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찾을 수 없는 기쁨과 감사와 평안을 누린다. 그렇기에 외부에서 변화를 찾을 필요가 없다. 변화는 내 안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자신을 변화시키신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으로 살아간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가장 어려운 때에 기록한 서신이다. 죄수의 몸으로 감옥에 투옥되어 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그들을 주의 이름으로 격려한다. 그리고 기쁨을 잃지 말라고 권한다. 바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