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본질은 예수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래되지 않았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 날에도 선교팀이 올 때마다 했듯이,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마도 니카라과 식의 쌀밥과 팥을 요리해서 주고 치즈 한 토막씩 언져 주는 식사가 아니었나 한다.  그래서 자동차에서 구입해 온 쌀과 팥을 옮기는 중에 팥이 봉지에서 흘러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많은 양이 아니기에 특별한 생각없이 음식 준비하는 교회 자매들에게 쌀과 팥이 든 봉다리를 옮겼다.  그리고 자동차로 돌아 오는데 교회의 한 자매와 4살 쯤된 딸이 땅에 웅크리고 앉아서 무엇인가 열심히 쳐다 보는 듯했다.  호기심에 가까이 가서 살펴 보았다.

살펴 보고 있는 나의 인기척을 느낀 자매가 햇빛을 손으로 가리며 검게 그으른 얼굴을 들고 나를 쳐다 본다.  노동으로 햇빛에 그으름과 소박한 미소를 담은 두 모녀의 얼굴에서 느꼈던 평안은 삶의 아름다움과 존중함을 느끼게 했다.  호기심으로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 나에게 땅에서 담아 모은 것을 팥 알들이 흙 먼지와 함께 두 모녀의 손 안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Son Oros’ 라고 말하는 자매의 말을 처음에는 알아듯지 못했다.  팥 알을 보이면 ‘금입니다.’라고 하는 자매를 보며 의아해하는 나의 얼굴을 쳐다 보면서 친절하게 반복해 줍니다.  ‘손 오로스’   금과 같이 귀하게 여긴다는 뜻임을 몇 번 들은 후에 이해를 했다.  처음부터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부족한 없는 우리의 환경으로 인함일 것이다.   죄송한 마음의 빚을 갚는 마음으로 그 모녀와 함께 떨어진 팥 알을 줍기 시작했다.

팥알을 금같이 여기는 마음에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감사할 수 있음은 많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의 지혜에서 나온다.  풍요로움이 도리어 삶의 저주가 될 수 있음은 작은 것을 귀하게 여기지 못할 때이다.  주어진 것이 당연하게 받아 드려지고 감사한 마음을 잃었을 때다.  행복한 삶을 살펴 보면 너무도 단순한 것에 있다.  백가지 좋은 것을 지니고 살아도 한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 마음을 꼿고 살면 불행할 수 밖에 없다.  반면에 백가지 부정적인 것 속에서도 하나 뿐이 감사의 조건을 붙들고 살면 행복할 수 있다.  

그래서 행복은 결국 나의 책임이다.  나의 마음의 결단에 있기 때문이다.  행복하겠다고 결단하고 좋은 것을 붙들고 살면 그만이다.   그러면 행복하다.  그리고 붙들고 사는 그것이 실질적으로 체험되어지는 것이고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일 때에는 더욱 행복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그랬다.  그의 삶에는 많은 부정적인 것, 불평할 만한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시시 때때로 밀려 닥치는 삶의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가지를 붙잡고 놓지 않았으며 그것이 가장 가치있는 것임을 확신하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았던 자였다.  빌립보 성도에게 보낸 서신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사도 바울이 더욱 알기를 원했던 것은 오직 그리스도였다.  예수의 은혜 안에 거하는 자로 발견되기를, 즉 알려지기를 소원했다.  그 은혜가 가장 고귀하고 가치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을 그것 하나만을 붙잡고 살기로 결단하고 그 안에 평안과 감사와 기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신앙인이었다.  

결국 신앙이라는 것은 너무 단순하다.  아무리 학식이 많아도 깨달을 수 없고, 세상의 모든 재물을 소유해도 만족할 수 없고, 최고의 명예와 권력을 가졌어도 누릴 수 없는 행복을 예수라는 그 분으로 인해서 갖게 한다.  “예수 한분이면 그냥 충분하고 만족한다.  예수 한분이면 그냥 행복하다.”라고 말하며 그렇게 결단하고 사는 것이 신앙 생활이다.  그 분 예수가 가장 큰 가치를 가지고 있으신 분이시기에 다른 것으로 인하여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다.   예수를 붙잡기 위해서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는 법을 배워 삶에 균형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

선교는 선교 대상의 삶을 발전시키고 부요하게 하는 사회 활동성의 종교 행위가 아니다.  선교 대상들에게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리는 것이다.  그 분을 붙잡게 하는 것이 선교의 목적이다.   그 분만 붙잡고 살도록 결단케 하는 것이 선교이고 전도이다.  내가 해야 할 선교의 본질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한 알 한 알 팥을 주어 모은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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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known님의 메시지…
Si, sen~or. Solo Cristo es el oro en nuestra v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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