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을 구입하라

진찰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
오늘도 기쁨 가운데 하루를 시작하는 이유는 세상이 줄수 없는 무엇이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성령 하나님의 간섭과 은혜로 선교의 삶에서 체험되어지는 천국의 기쁨과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것,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이다.  사마리아 땅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님께서 약속해 주신 말씀이 있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요한 복음 4장)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을 먹는 자에게 약속된 영원히 마르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 근거하는 기쁨은 도리어 우리에게 갈증을 더하게 한다.  그러나 하늘의 것은 솟아나는 풍성에 근거할 뿐이다.  날마다 하늘의 은혜를 허락해 주시기에 열악한 선교지의 삶을 기쁨과 감사로 감당한다.  그렇기에 보내시는 이도 주님이시고 능력 주시는 이도 주님이시다.  부름받은 자는 오직 충성할 뿐이다.  오늘도 능력 주시는 주님의 배려와 사랑을 찬양한다.  허락해 주시는 기도의 응답도 하나님의 풍성하심과 사랑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것에 감사할 뿐이다.

오래 전부터 ‘하루에 40명 이상의 일반 환자를 받을 수 있는 클리닉이 되도록 해 주십시오.’ 라는 기도를 해 왔다.  40명에 어떤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려서 배운대로 기도를 할 때는 간구하는 내용을 정확하게 말하는 가르침이 있기에 숫자를 찾다가 그냥 붙잡은 40이라는 숫자였다.  당시 상황으로는 하루 환자 40명은 꿈만 같은 숫자였기에 그런 목표를 세운듯 하다.  벌써 2년이 넘은 이 기도의 내용은 기도하면서도 ‘언제나 40명이 찰까?’ 라는 믿음이 적은 질문을 던졌던 것도 기억한다.

그런데, 요즘은 가끔씩 40명을 넘는 환자들이 찾아와 클리닉이 북썩한 경우를 본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  넘치는 환자로 인해서 사역자들과 제대로 이야기도 못하고 이층에 있는 내 사무실로 빠져 나왔다.  이층 계단을 오르면서 천국의 기쁨과 은혜를 다시 맛본다.  마치 천국을 향하여 오르는 길을 걷는 것같았다.  좋으신 나의 아버지께서 이렇게도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나와 동행해 주심을 느끼니 천국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주님과 함께 하는 그곳이 천국이라는 어느 찬송가의 가사의 작사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마태복은 13장 44절 이후에는 밭에 감추인 보화를 예화로 주어지면 천국에 대한 가르침이 주어진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에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소유를 사느니라.”  이렇게 좋은 천국의 기쁨을 소유하기 위해서 세상에서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과 바꾸어도 절대 손해가 없다는 말씀이다.  천국을 맛본 사람은 그 맛 때문에 천국을 바라며 살게 되어 있다.  그 천국을 사모하고, 그 천국의 기쁨을 소망한다.  그 천국을 위해서 흥분과 기대로 값을 치룬다.  세상의 모든 것과 바꾸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으로 산다.  천국을 향한 간절함에 더하여 절실함으로 변한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고난의 인생을 인내하며 견디는 소극적인 삶이 될 수 없다.  인생 자체는 누구에게나 고난이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다고 고난에서 면제를 받지 않음은 누구나 잘 알고 경험한다.  그러나  영생토록 솟아나는 기쁨의 샘물을 제공하시는 그 분이 내 안에 거하시기에 고난 가운데에서 감사와 찬양이 끊이지 아니하는 축복된 삶을 살아 간다.  환경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은 주위 환경에서 힘을 얻어 살아 한다.  재물로 힘을 얻고, 지식으로 힘을 얻고, 권력으로 힘을 얻으려 한다.  그 힘을 자랑 삼아 삶을 유지한다.  그러나 믿는 자는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힘을 얻어 능력으로 산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옥에 갇혀 있던 자였지만 기쁨을 누리며 힘있게 지냈다.  천국을 맛 본자는 그 영에 더욱 힘이 있다.  그리고 인생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랑의 아버지께서 계신 그곳을 더욱 소망하며 기쁨과 평안, 기대감으로 하늘 나라를 바라 보며 산다

우리 막내 하린이가 미국 방문할 때가 되면 떠나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듯이....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Tranquilo - 트랑킬로

안식년을 마치며

니카라과의 교육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