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장기 계획을 준비하면서


삶에서 어떤 큰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를 두고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자리에 처할 때 늘 가롯 유다를 생각하게 된다.  그는 제자로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면 예수님을 배반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동정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나도 가롯 유다와 같이 늘 고민과 갈등 속에서 날마다 주님을 따르는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든지 크고 작은 일에서 주님을 배반할 수 있는 미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늘 발견한다.   이것은 나의 믿음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죄의 속성을 버릴 수 없는 한 인간의 문제이다.  

배반자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가롯 유다도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을 내린 사람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큰 은혜를 받았기에 자신의 삶을 뒤로 하고 주님 따름을 결정했었을 것이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삶이 당시의 일반인들에게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3년을 견디었다.  제자의 훈련과 빡빡했을 공동체 생활을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12명 중에 하나다.  마리아가 비싼 향수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을 때, 아까워하는 마음을 보이며 책망했던 사건 이외에는 부정적인 안목으로 볼만한 그에 대한 기록이 성경에는 없다.  그 사건 조차도 재정을 담당한 제자로서 마땅히 할 수 있는 행동과 말이라고 이해하고 넘길 수 있다. 그 외에도 다른 제자들과도 잘 어울렸고, 문제를 일으킨 기록도 없이 성실한 제자의 삶을 살았던 자였다.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성실한 삶을 살고 있듯이....  문제가 있었던 제자는 도리어 열정으로만 도배된 듯한 베드로라 보는 것으로 마땅하다.  즉, 가롯 유다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까지 크게 문제 있었던 자가 아님을 성경은 말한다.  그리고 끝까지 그렇게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 않을 것임을 확인했을 때, 가롯 유다는 결국 예수님을 포기하고 말았다.

예수님 따름을 포기했을 때에 그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은 삼십이 탐나서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설명은 너무 단순하다.  아니면 다른 제자들에 대한 질투라도 있었나?  예수님에 대한 심한 실망?  예수님의 능력을 통해서 자신의 야망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기대에 대한 좌절?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는 미래의 성공에 대한 보장?  이스라엘을 로마의 식민지로부터 구원하고자 하는 그의 광적인 애국심? 아니면 발작적인 발상?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가롯 유다 마음 안에 들어가 볼 수 있는 MRI라도 있으며 모를까, 그 이유를 알 방법은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신한 것은 그는 자신의 계획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랐던 자였다.  그 삶에서는 그가 주인이었고, 예수님은 도구였다.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제자됨을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 속에 움쿠려 있는 자아를 섬기는 자였을 뿐이었다.  제자로 부름 받으며 함께 3년의 세월을 지냈지만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치 못했던 자였다.  자신의 계획과 야심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며 조정하려 했던 자였을 뿐이다.  결국에는 자신을 속이며 하나님을 속였고, 자신의 계획과 목표를 위해 예수의 이름만 빌린 자였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자들이다.  자신의 계획과 목표에 도움이 되지 않을 때에는 버린다.  도리어 삶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할 때는 두번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특별한 부류의 사람들인가?  아닐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늘 움쿠리고 있는 우상이다.  자신에게 절하고자 하는 마음.  자신의 유익과 자랑이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는 것보다 앞선다.  자신의 삶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가롯 유다는 우리 안에서 늘 발견되고 있는 우리 자신 안의 우상일 뿐이다.  그것 죄성을 직시한 사도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서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전 9:27) 라고 두려움으로 자기 성찰을 계속한다.

요즘 프로비덴시아 의료 선교관을 새로운 곳에서 시작한 후에 장기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기도와 묵상으로 많은 시간을 지내고 있으며 다른 선교사님들에게서도 조언을 얻고 있다.  내 자신 안에 있는 우상을 먼저 치워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왔다는 선교도 이름만 선교이지 자신의 자랑을 위한 것으로 변질 되어 질 것이다.  내 안에 있는 가롯 유다를 치워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진정한 선교를 이룰 것이다.  

‘이 땅에 우상을 불태우소서’ 라는 기도와 찬양보다, ‘내 안에 있는 우상을 불태우소서’ 라는 기도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후원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든든한 기도의 후원을 부탁드린다.

댓글

Unknown님의 메시지…
공감을 넘어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김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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