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줍는 것이다


마나구아 시에서 서쪽으로 15 마일 정도 떨어진 지역에 ‘라 반데라’라는 마을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 아직 물도 없고 전기도 없는 곳이다. 공산당 시절에 산디니스타 당을 위해서 내전에 참여 했던 가정들에게 보상 차원으로 이 지역의 땅을 정부에서 분할해 주면서 시작된 마을이다. 친구 목사님의 소개로 아이다 목사님을 알게 되었고, 아이다 목사님은 그곳에 지교회식의 개척 교회를 시작하셨다. 그리고 지역을 위해서 함께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선교사인 나를 초청한 것이다.

라 반데라를 방문했을 때 마을 가정들을 돌아보면서 마을 사람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에서 ‘자넷 라구나’라는 이름을 가진 자매가 많이 인상에 남는다. 그리고 잠시의 만남이었지만 진한 감동이 나의 마음에 찾아 왔다. 굳이 찾아 온 감동을 굳이 밀쳐 낼 이유는 없었지만 생각보다 오래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넷 자매와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은 집 앞에서 밭 일을 보다 자매가 쉽게 눈에 들어 왔기 때문이다. 집이라고 부르기에는 사실 너무 허름했다. 자매는 검은 비니루로 만들어진 집 앞에 널쳐 뒹굴고 있던 호박을 가꾸고 있었다. 지나가면서 ‘올라’ 하고 자넷 자매에게 인사를 했다. 미국말로는 ‘하이’라고 번역하면 적당한 인사말이다. 이 인사말이 숙이고 있던 허리를 폈게 했다. 그리고 잠시지만 자세히 살펴 보는 눈길을 느낄수 있었다. 아마도 마나구아 시내에서나 볼 수 있는 외국인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그것도 동양인이 아니던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기회다’라고 생각하며 문은 없지만 철사 줄로 경계선을 만들어 놓은 자넷 자매의 집 입구 앞에 섰다. 들어 가도 되는지를 묻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아델란떼’ 라는 소리가 급한듯이 들려 왔다. 그렇게 시작된 교제가 적어도 20분 이상 계속되었다. 자넷 자매는 그저 행복하다. 5살짜리 아들을 두었다. 남편은 고깃배도 없이 호수가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다. 그래서 그런지 물고기 그물이 벽에 걸려 있다. 마치 고급 생선 요리집의 내부 치장을 위해서 걸어 놓은 듯이 단정한 모습을 드러낸다. 바닥에는 생선 뼈가 널려 있다. 아마도 12마리나 된다며 자랑했던 닭들에게 주었던 사료로 쓰이지 않았나 싶다.

자넷 자매는 행복했다.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는 듯한 만족한 마음의 상태가 느껴진다. 그녀는 집의 뜰에 키우는 호박이 잘 자라서 기뻤다. 잘 자란 호박을 하나 추수 할 때는 마치 자식을 낳는 듯을 기쁨을 누린다고 설명까지 해 주었다. 남자로서 이해되지 않는 표현이었다. 아마도 수고 후에 얻는 뿌듯함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짐직 뿐이다. 돼지가 새끼를 낳아서 기뻐한다. 어디 있는가 보았더니 검은 비니루 집 뒤 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돼지와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이라 생각하면 적당하다. 그래도 행복했다. 물은 길러 와야 하는데 그리 멀지 않아서 감사하다고 말한다. 그것도 행복의 조건이다. 멀리 있는 학교에 아들을 보낼 때 옆집의 소달구지를 태워 보낼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 남편이 돌아 올 시간이 되어서 식사를 준비 할 시간이 되었다고 한다. 식사는 쌀 밥,팥 끓인 것, 그리고 기쁨으로 거두어드린 호박을 재료로 만드는 음식이라고 설명한다. 장작을 가져다 불을 지피기 시작한다. 행복에 넘쳐 있는 자넷 자매를 보며, ‘디오스 레 벤디가’ 라고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하며 집 경계선을 넘어 나왔다.

뜨거운 태양 아래를 걷지만 내 마음도 풍성해져 있었다. 자넷 자매 안에서 넘쳐 흐르는 감사의 마음에 전염된듯 하다. 그리고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며 마을 길을 걸었다. 없어도 저렇게 행복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있어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잠언 기자의 말씀이 떠 오른다.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개역 개정) 행복은 널려 있다. 행복은 보는 사람만이 누리는 하나님의선물이다. 결국 행복은 환경이 아니라 마음 가짐이다.

댓글

Oldman님의 메시지…
없어서 더 풍성하고 행복한 사람들이 나눔의 삶도 더 잘 사는 듯 합니다. ^^
그렇죠.
니카라과의 어떤 분이 저에게 말씀해 주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우리는 콩 한알이 있어도 나누어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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