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무숙자 사역에 대한 생각(고민)이 많다.  3주 전에 무숙자 선교관에서 시작된 말다툼이 선교관 밖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는 급기야는 사역자와 동네 불량배와의 싸움으로 진전되었고 결국 피를 보고 마쳤기 때문이다.   싸움의 시작은 물론 동네 불량배의 잘못으로 인해 시작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역자가 경찰 구치소에 구감되었다.  상대편은 미성년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 경찰에서는 동네 불량배들의 보복이 걱정되니 선교관을 한달 정도는 닫으라는 달갑지 않은 지시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던져 준 한마디의 말이 마음에 날카롭게 날아와 박혔다.  그런 자들은 도와도 소용없으니 사역을 정리하는 것도 생각해 보십시오.”  요청하지도 않은 쓰라린 조언을 해 주었다.  목으로 넘기기에는 너무 쓴 액체를 입에 담고 있는 모습으로 씁쓰름하게 몇 일을 지냈다.  쓴 맛을 기도 가운데 사역의 약으로 변화시키며 지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아직 아물지도 않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경우가 생겼다.  이곳에 계신 선교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중, 이런 질문을 받았다.  질문이라기보다는 나름대로의 편견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형식상 문장의 끝 억양이 올라갔으니 질문이라고 하겠지만, 대화의 내용을 보면 비웃음이라고까지 생각되었다.  아물지도 않은 상처 때문에 자격지심으로 그렇게 받아드렸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할 때가 부지기수 아닌가? 

질문의 내용은 이렇다.  전 목사님은 많은 것을 갖추신 선교사인데…” 여기까지는 좋다.  그 다음이다.  왜 그런 좋은 은사를 영적인 것에 투자하지 않으시고 낭비하고 있으십니까?”  말하자면 사회에서 지탄을 받고 있는 알콜 중독자, 매춘 종사자, 마약 상습자, 불량배와 같은 작자들을 돌보는 무숙자 사역에 투자를 하느냐는 말씀이다.  사실,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도 버린 자들과 같이 보이는 이들이다.  배고프고 헐벗은 이들, 작은 자 중에서 작은 자를 돌보는 사역은 영적인 일이 아닌 것이고, 은사의 낭비이며, 재정의 허비이다.  그런 사역은 이류 선교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씀은 명언 중에 명언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지니..” 라고 더하심으로 말씀의 중요성, 즉 영적 양식을 강조하기 위해서 육의 양식인 빵을 비교 사용하신 것이다.  하지만 빵이 하나님 나라의 것이 아니라던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의미는 전혀 없으셨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빵을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사역에 무유익, 또는 방해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절대 그렇지 않다.  재물에 대한 욕심은 하나님의 나라의 방해 요소됨이 분명하다.   그러나 육신의 기본적인 양식인 빵은 인간의 삶에 기본적 필요다.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빵 없이 살 수 있는 인간도 없다.  이 기본적인 인간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는 자들에게 그 필요를 채워주는 일은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시키는 영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굶주림 앞에서 인격의 고귀함이나 인간됨을 송두리 채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몇몇의 고매한 인격과 신앙의 소유자들은 인간됨을 고수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빵은 재물이 아니다.  빵은 필요조건이지 사치품이 아니고, 본능의 부름에 대한 응답이지 욕심에 대한 채움이 아니다.    그러므로 빵을 나누는 것은 육적인 기본필요를 만족시킴으로 영적으로 향하게 하는 사역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사역은 영적이다.  빵 이야기를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프랑스의 엠마우스 공동체를 설립하여 무숙자들을 돌보신 아베 피에르 신부님의 말이다.  나의 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육적인 것이고, 남의 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영적인 일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영적인 사역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섬김은 어렵다.  섬김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버려야 이루어진다.  자존심, 편견, 미움, 물질, 지식, 지위, 경험 조차도 버려야 이룰 수 있음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온전한 섬김은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까지 버려져야만 이루어지기에 더욱 어렵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삶 전체를 우리를 위해서 버리심으로 한 온전한 섬김의 본이 되어 주셨다. 

요즘은 섬김을 배우며 지내는 하루 하루가 사실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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