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참여

콜리나 선교사 부부의 앰파나다
콜리나 목사님 부부는 베네수엘라의 모 교회에서 4개월 단기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도미니카로 들어 오신 선교사 부부이다.  그레이스 미션 센터에 머무시는 동안 몇 번 인사를 나눈 것 이외에는 다른 인연은 없다.   다른 분들보다 편하게 교제하게 된 이유는 친근감이 넘치는 두 분의 긍정적인 성품이고, 또한 사모님의 배경이 중국계 베네수엘라 사람이라서 동질감 때문이다.    


그 후에 선교사로서 서로의 사역에 대한 비젼을 나누는 기회가 있었다.  경제적으로 힘든 나라에서 오신 선교사님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대화였다. 그러나 성령님의 역사 가운데 결국에는 서로의 마음을 열게 했고, 함께 동역하는 관계로까지 발전되었다.  

작년 10월 초에 도공에 들어 오신 경우이고, 4개월 선교 기간을 예상했다.  그러니 2월 말에는 다시 베네수엘라로 들어 갈 계획이었다.  그런 분들에게 적어도 2년은 함께 동역을 해 달라고 부탁 했고, 목회 계발 사역원이 잘 자리를 잡을 때까지 함께 동역해 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몇 일 간의 고민과 기도 후에 그렇게 하도록 하시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선교지에서는 귀한 동역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 선교의 큰 기쁨이고 감사의 제목이 된다.  


4개월 단기 선교을 생각하고 도공에 오셨을 때는 방문하는 교회에서 제공하는 거처에서 잠시 잠시 지내실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2년 이상을 섬기기로 하셨으니 월세 집을 찾아야 했다.  가난한 나라에서 파송된 선교사 부부라서 내가 먼저 앞서 걱정되었다.  그래서 불편을 무릅쓰고 진정한 관심을 보이며 질문했다.  “선교비는 어느 정도 준비 되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답이 없으시다.  다시 질문을 드렸다.  파송 교회에서 어느 정도 선교 지원은 있습니까?  목사님 내외분이 대답은 예상 의외였다.  아무런 지원이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알아서 생활을 해 나가야 한다고 말씀해 주신다.  


일반적으로 중남미의 목사님들이 자비량으로 교회를 섬긴다.  조금 규모가 있는 교회의 교역자들은 사례비를 받아도 너무 과 할 정도로 받고, 95% 이상의 교회의 목회자들은 자신이 생활비를 마련하며 사례 없이 섬기는 자비량 목회자들이다.  같은 맥락에서 선교사도 교회의 파송과 기도의 후원은 있어도 재정적인 지원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그리 틀리지 않다.  콜리나 선교사님 가정의 경우도 그렇다.


그럼 어떻게 생활비를 마련하실 계획이십니까? 라는 질문에 많이 생각하신 듯한 답변을 해 주신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오후에 앰파나다 (Empanada-우리 나라의 튀김 만두와 같은 것으로 속에 치즈 또는 닭고기를 양념해서 만든다)를 만들어서 저녁 예배가 있는 교회에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성도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판매함으로 필요한 생활비를 마련하실 계획라고 하신다.  너무도 당연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설명을 하신다.


그 이후로 사역이 바쁘지 않은 날은 일찍 집으로 들어 가신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 오셔서는 어느 교회 예배에 참석하셨는지, 그리고 몇 개의 앰파나다를 팔았는지를 이야기 해 주시면서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돌보심에 감사한다.  어떤 날은 전 날에 팔고 남은 앰파나다를 가져오신다.  복음을 위해서 앰파나다로 가득 채워진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기쁨으로 행상을 하시는 콜리나 목사님 부부가 너무 귀하고 존경스럽다.  


선교지를 니카라과에서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변경하면서 후원에 차이가 많이 생김을 보면서  “하나님이 선교비 안 보내 주시면 미국으로 들어가서 목회하면 되지...”라고  생각했었다.  복음을 위해서 고난에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나의 자세가 들켜 버린 듯해서 부끄럽다.  


콜리나 선교사 부부를 보면서 사도 바울의 빌립보서 3장 10절의 말씀을 기억해 본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의 참여를 알고자 그 죽음심을 본 받아...” 에서 ‘고난의 참여’는 원어 헬라어에서 “코이노니안 톤 파티마톤” 이다.  ‘고난의 교제’라고 우리 말로 번역해 본다.   교제는 기쁨이 되기 때문에 자원해서 하는 것이다.  원치 아니하는 것은 교제가 아니다.  즉,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기쁨으로 받아 드리는 자세를 이야기 한다.  

복음을 위해서 앰파나다 행상을 마다하지 아니하는 콜리나 선교사님 부부는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기쁨으로 받는 진정한 선교사이시다. 선교사뿐만 아니라, 성도는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기쁨으로 자처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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