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닉의 위한 조그마한 빌딩을 구입했다. 물론 고민에 고민하다가 힘든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했지만 힘들게 결정을 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구입하게 된 선교 건물로 몇 번이나 인도해 주셨다. 여성 암 검진 사역 등등의 의료 선교가 계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장소가 비좁게 느껴졌다. 미국 선교단체의 도움으로 필요한 많은 기구를 도네이션 받았지만 설치할 자리가 없었다. 이 선교를 위해서 의료 선교사께서 함께 합류하여서 내년부터 함께 동역하시기로 했다. 새로운 곳으로 이동해야만 하는 상황에 쳐했다. 주위 사람들의 권고, 의료 선교의 발전, 의료 기구의 도네이션, 새로운 의사 선교사님의 합류, 등등은 나의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분명했다. 그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면서도 걱정과 두려움 속에 머물어 떨고 있어 얼마 동안 결정하지 못했다.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조그마한 짐승이었다. 두려움의 대상 앞에 모든 근육이 마비되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영적 근육이 마비되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또한 다른 대책도 없으면서 고민과 걱정 속에서 어두운 시간을 보냈다.

이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는 것’과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삶’에 큰 차이가 있음을 새롭게 깨달았다. 하나님을 믿는 자가 있다. 반면에 그의 인도하심을 삶에서 따르는 자는 따로 있다. 주어진 상황으로 인해서 두려움과 걱정에 쌓여 움직이지 못하는 삶, 정해진 삶의 테두리를 벋어나지 못하고 영적으로 정체된 삶을 살고 있는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얼마나 많은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약 2:22)

믿는다는 것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안다 (Know)’와 ‘산다(Live)’. ‘앎’ 이 ‘삶’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믿음이 온전케 될 수 없음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 '앎' 의 ‘ㅇ’을 ‘ㅅ’으로 바꾸어 '삶'으로 만들어야 한다. 즉 마음 속의 믿음을 삶 속의 행동으로 온전케 하는 것이 ‘믿음의 삶’이다. 믿음과 삶이 연결되지 않으면 믿음 따로, 삶 따로의 분열된 신앙 생활이 된다. 결국 자신도, 세상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무기력한 삶이다.

결국 고민과 걱정에서 벋어나서 믿음을 행함으로 옮겼다. 의료 선교관을 구입하고 공사를 시작했다. 대신 믿음으로 행하기 위해서 대가를 치루었다. 재정적인 큰 빚을 지고 구입을 했다. 약 10만불이라는 재정적인 부담을 가지고 시작한다. 사람이 빚을 지면 걱정과 근심과 두려움이 더해야 하는 것이 실질적인 인간의 반응일 터인데, 가진 것도 없으면서 평안과 기쁨과 감사 가운데 있음이 신기할 따름이다. 오늘도 선교 의료관 공사 현장에서 하루 반나절을 보냈다. 무슨 배짱으로 이러는지 나 자신도 신기하다.

요즘은 의료 선교관 후원금 모금을 위해서 기도하며 계획하고 준비하고 있다. 9월 말부터 교회를 방문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허락되는 교회를 찾아가서 기도의 동역자, 믿음의 동역자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7년 이상을 선교 생활 하면서 한번도 선교비 요청하지 않았었는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많큼 선교 합니다.’ 라고 했던 내가 ‘선교 후원금 부탁드립니다.’ 라고 할 수 있을런지… 하지만 내가 부름받은 니카라과 땅의 백성을 위함이니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리. ‘나라고 못할 것도 없으리라’ 생각하면서 열심이 뛰어 볼 계획이다. 8년 째되는 이제 선교를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다. 조금의 긴장과 흥분이 나의 마음을 채운다.

댓글

bob1th님의 메시지…
참으로 오랜만에 선교사님 블로그에 들어와봅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선교현장의 모습을 가감없이 진솔하게 나누시는것에 감동과 감사를 전합니다. 선교사님의 사역을 위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디트로이트에서 허춘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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