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은 기쁨을 낳는다


오늘도 집으로 돌아 오는 길이 멀게 느껴진다. 사실 20분도 걸리지 않는 길이지만 가는 길보다 돌아 오는 길은 길다. 시간의 길이는 주관적이라는 말이 맞다.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전적으로 나의 피곤함에 있음이 틀림없다. 살아도 살아도 익숙해 질 수 없는 선교지의 열대성 기후가 그렇게 만든다. 오래 살아 본 사람이 아니면 이해 할 수 없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몸은 피곤한데, 마음은 그렇지 않다. 돌아 오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물론 속으로 속삭였다. 그렇지만 뚜렷한 울림이 있었다. ‘아, 너무 좋다…..’

누구라도 곁에 있었다면, ‘참 좋지요?’ 라고 말하며 질문 형식으로 대화를 끄집어 냈을 것 같다. ‘뭐가 그리 좋아요?’라는 질문이 다시 돌아 오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그러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그냥 마음이 흐믓해요… 나에게도 그 이유는 뚜렷하지 않고 정확이 꼬집어 뭐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그냥 마음에 기쁨과 만족함이 꽉 차 있어요.’ 차 밖에서 밀려 드는 습도는 자동차가 뿜어내는 시원한 에어콘 바람을 무시한다. 소낙비라도 시원하게 내려주면 이 습기를 잠시라도 씻어 버릴텐데…

집으로 오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오늘은 왜 마음에 이런 기쁨으로 꽉 차 것일까? 그리고, 그 형제의 얼굴이 떠 올랐다. 임마누엘 말티네스 (Imanuel Martinez): 남, 58세, 무숙자, 가족과는 연락이 끊겼음, 촌딸레스 출신, 전 산타니스타 해방군, 전 알콜 중독자 ….

오늘 아침도 늘 하듯이 무숙자 선교관에 섬기고 있었다. 임마누엘 형제가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냈다. 평소에 조용하고 숫기가 별로 없는 이 형제는 자기의 전 재산이 들어 있는 백팩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찾았다. 한 동안 뒤적거린 후에 조그만 무엇인가를 드디어 찾아낸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조용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가득히 담기는 것이 보였다. 앞에 서 있는 나에게 그것을 건내 주면서 설명을 빼뜨리지 않는다. ‘어제 교회에서 받은 선물인데 당신에게 주고 싶었다’는 내용을 더듬 거리며 말했다. 성탄절에 크리스마스 트리에 다는 장식이다. 나무로 만든 싸구려지만 임마누엘 형제의 마음이 담겨 있음이 느껴졌다. 몇 번이나 반복되는 감사의 인사는 그를 쑥스럽게 만들었다. 슬그머니 빠져 나가려는 그를 붙잡고 사진이나 하나 찍자고 했다. 주위의 무숙자 형제 자매들이 자기도 함께 찍겠다며 달라 붙기 시작했다. 임마누엘 형제의 작은 선물은 나의 마음을 하루 종일 붙잡고 놓아 주질 않았다. 섬김은 진정으로 축복이다. 너무 큰 기쁨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섬길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은 큰 감사의 조건이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구름이 터져버렸다. 잠시 후면 터트리려고 울먹이던 아기와 같이 구름의 울움이 터졌다. 차창을 굵은 빗방울이 구분하지 않고 마구 공격한다. 넘치도록 흐르는 빗물을 씻어내기 위해서 윈도우 와이퍼를 단게를 올리며 조정했다. 결국 최고의 빠르기까기 조정될 정도로 쏟아 붙고 있었다.

내리는 소낙비가 습도를 조절해 시원해졌다.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 이렇게까지 나를 사랑하십니까?’ 오늘 밤은 조금 시원하게 지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마음이 기뻤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 합니다.’라고 외쳤다. 감사는 주어지는 것보다 감사를 찾는 것이 기독교 영성이다. 나의 마음은 오늘 묵상했던 시편 57편의 말씀을 다시 기억하고 있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Tranquilo - 트랑킬로

안식년을 마치며

니카라과의 교육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