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사역할 교회의 담임 로베드또 목사님으로부터 교회의 부속 건물의 열쇠를 건너 받고 있다.)

징검다리는 건널 수 없는 곳을 건널 수 있도록 하는 도우미 역할을 한다. 물가에 널려있던 쓸데없는 돌이었다. 하지만 옮겨져서 잘 배치될 때 시내물을 건널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 5월에 시작했던 의료 진료소는 징검다리 역할을 훌륭하게 해 냈다. 실패했다는 생각으로 접어야 할 적당한 시기를 찾던 의료 선교사역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버려진 그것을 들어서 징검다리의 큰 돌로 사용하시는 은혜를 베푸셨다.

의료 사역은 작년 5월 말에 시작됐다. 작은 규모이지만 의료 선교관을 정성을 다해서 지어졌다. 니카라과 수준으로 보면 훌륭한 모습을 가졌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섬기는 의료 센타라서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다. 찾아 오는 모든 사람들이 잘 대접받는다는 생각으로 의료 선교관을 드나들기를 원했다. 이렇게 잘 꾸며 놓고 의료비도 저렴하면 문 앞에 환자로 장사진을 이루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같지 않았다. 물론 이 지역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나의 실수였다. 장사진을 이루는 커녕 마약과 매춘 등으로 위험한 지역이라고 소문난 곳이니 찾아 오는 것이 도리어 놀라운 경우라는 생각을 못했다. 사람이 무엇인가 너무 원하다 보면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사랑에 눈멀었다는 말이 있듯이.

결국 하루에 두세명의 환자만 돌보는 잘 꾸며진 의료 선교관이 내 마음을 무척 고생시켰다. 덕분에 기도가 많았고, 훈련도 잘 받았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이렇게 위로했다. 위험한 지역이지만 조금만 더 버티면 이곳의 멋진 모습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찾아 오게 될거야’‘때가 되면 (그 때가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누구도 모르지만…) 이 지역도 안전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되면 빛을 볼 날이 있을거야사람은 하나같이 자기 합리화의 선수다. 그것도 올림픽에 출전해도 될 프로급이다. 조상 아담이 당신이 짝지어 준 저 여자 때문입니다.’ 라고 하면서 핑게를 찾았듯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보다 합리화가 덜 괴롭다. 그러면서 1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고, 결국에는 자기 합리화는 자신의 실수를 장기화하는 것 외에는 다른 열매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그저 아타깝게 바라보면 2달 정도를 보냈다.

그러던 중 아멘이라는 현지 중소 교단에 속해 있는 타베르네클로 복음주의 교회(Tabernaclo Iglesia Evangelica)에서 연락을 받게 된 것이다. 교회의 부속 건물이 있는데 그곳에서 동역으로 의료 사역을 했으면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교회 쪽에서는 지역에서 가장 번화하고 안전한 사거리에 위치한 조그만 건물을 사용하도록 허락하고, 우리 쪽에서는 의료 선교에 필요한 나머지를 책임진다는 내용이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다시 한번 체험했다. 실패를 허락치 않으시는 하나님을 체험했다. 우리의 실수조차도 징검다리로 삼으셔서 합력케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체험했다. 나는 시편 23 6절의 말씀을 너무 좋아한다. 내 평생에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내가 도망쳐도 따르는 여호와의 선하심, 내가 숨어 다녀도 반드시 찾아내시는 여호와의 인자하심, 내 평생 집요하게 따르시는 주님의 열심이 나를 따라다닌 것을 이번에도 절절히 체험했다.

예전에 시골의 징검다리는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르치는 도구였다. 젊은이가 이쪽에서 징검다리를 열심히 건너고 있다. 그런데 저 쪽에서 마을 어른이 ‘어흠’하고 헛기침 한번 하신다. 그러면 알아차리고 ‘어르신네, 먼저 건너 오세요’하며 젊은이는 열심히 왔던 길을 뒤돌아 돌아간다. 어른 공경을 배우게 했던 도구다. 물가에 있으면 쓸모없는 돌덩어리가 흐르는 물 위에 놓이게 되면 징검다리가 되어 가르침의 도구도 된다.

마찬가지다. 세상에서 실패는 아픔이다. 쓸모없는 폐물이다. 하지만 믿는 자에게는 실패조차도 좋으신 아버지의 은혜 속에 놓일 때 징검다리 되어진다. 아버지 사랑을 배우게 하는 도구 된다. 말씀은 틀린 것이 전혀 없는 진리이다. 쉬운성경에서는 시편 18편28절을 이렇게 번역했다. “여호와께서 내 등잔에 불을 붙여 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께서 나를 둘러싼 어두움을 빛으로 바꾸셨습니다.” 어두움을 빛으로 바꾸어 주시는 주님의 은혜다. 실패를 징검다리도 삼아 주시는 주님의 인자하심이다. 주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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