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마리아나



벌써 주일이다. 8월의 마지막 주일. 내일 모래면 9월을 맞이 한다.

미국의 동북부 지역은 벌써 가을의 기운을 아침마다 느낄 있는 때다. 여름의 녹색 대지는 가을의 도래와 더불어 총총히 지역을 떠나 다시 그날을 아쉬워하며 사라질 것이다. 주위에서 보는 사람들을 의식이라도 하듯이 살며시 갈아 입고, 노랑, 빨강,흐려지는 녹색의 옷으로 치장하며 수줍은 나타날 것이다. 갈아 입은 화려한 옷자락을 정신없이 없이 바라보다가 가을의 끝자락까지 따라가면 맑은 청색 하늘과 부딪치게 된다. 이렇게 가을의 풍경에 취해 넋두리를 잃고 있을 지나가는 가을 바람은 빰을 만지듯이 가볍게 스치고 지나간다. 정신을 차리고 세월의 빠름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리고 가을은 세월을 따라가며 아련해진 기억들을 되새기에 한다. 가을이 나를 찾아 오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아마도 선교지가 아직도 고향 같이 여겨지지 않는다는 증거일 것이다.

오늘도 주일을 맞이하여 무숙자 선교관의 예배를 위해서 나간다. 오늘은 코세차 교회의 올테가 목사님과 교인들이 자원해서 식사를 준비하고 예배를 인도해 주는 날이다. 9 반경에 도착했는데 벌써 목사님과 일행은 부엌에서 식사 준비에 바쁘다.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 무숙자 선교관의 친구들과 간단하게 악수를 했다. 태어났을 안고 축복 기도해 주었던 마리아나가 나를 발견하고 달려와서 가슴 깊이 안긴다.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고 벌쩍 들어 하늘 높이 올려 본다. 예전같이 가볍지가 않다. 벌써 세살을 넘었다. 100 미터, 200 미터 세계신기록을 가지고 있는 우산 볼트라는 육상 선수보다도 세월은 빨리 뛰고 있다는 느낌이 나를 흔든다. 아무 죄없이 태어난 예쁜 마리아나의 장래를 그려본다. 마리아나의 무숙자 생활은 계속될 것이고, 10 남짓하면 본드 병을 가기고 흐트러진 눈으로 돌아 다 것이며, 그런 얼마 지나면 임신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마리아나를 이곳에서 빼내지 않는다면 보든 훤한 결과다. 악순환, 가난의 대물림, 상황 포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답답함과 불쾌함이 속을 뒤틀어 놓는다. 마리아의 장래에 대한 생각이 썩어서 역겨운 악취로 변해서 후각을 자극했다. 구역질이 올라 온다. 마리아나를 위해서 아무런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는 나의 모습도 역겨운 악취다.

무숙자들의 장래까지는 생각하지 말자. 오늘의 식사 한끼가 급한 자들이고 잠시의 배부름으로 만족하는 자들이다. 내일을 염려하지 않고 사는 성경적(?) 삶을 살고 있는 자들인데 내가 나서서 걱정하나. 4 전에 무숙자 사역을 하면서 벌써 마음에 정리한 부분이다. ‘조건 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푼다. 그들에게 변화되어야 한다는 요구없이 아버지의 사랑을 나눌 것이다.’ 그래도 어린 아이들을 보면 속상한다. 그들을 위해서는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마리아나의 맑은 눈동자를 보고 있는 나를 흔들고 있다.

마리아나를 내려 놓고 껴안아 준다. 그리고는 피하듯이 돌아서서 부엌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부엌에서 지내는 편이 나의 정신 건강에 좋겠다. 오늘의 식사는 니카라과식 밥과 스파게티, 그리고 옥수수 또르티야 반쪽이다. 니카라과식 밥은 식용유로 먼저 생쌀을 볶는다. 볶을 소금과 고추, 양파등을 넣고 간을 맞춘다. 볶음을 마치면 다음에 솥에 물을 넣고 끌인다. 그러면서 뜸을 드리면 기름진 밥이 탄생한다. 니카라과식 스파게티도 간단하다. 우선 토마토를 썰어서 넣고 끓인다. 충분히 끓인 토마토 소스에 케챱을 듬북 넣는다. 소금으로 간을 맟춘 후에 삶은 스파게티 국수를 넣고 비빈다. 나는 스파게티 뒤지는 부분을 맡았다. 국수가 밑에 달라 붙지 않게 하기 위해서 숱가락을 가지고 스파게티 국수를 계속 뒤젹인다. 뒤집히는 국수의 부분에서 튀어나간 스파게티 소스들이 나에게로 달라와서 얼굴에 붙는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우리 무숙자 선교관 친구들이 좋다고 손가락질 하면 웃는다. 나도 덩달아 웃는다. 이렇게 섬기는 가운데 감사와 기쁨이 마음에 차곡 차곡 채워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음 구석에서 밀고 올라오는 마리아나를 향한 속상함을 막을 길이 없다. 오늘은 하루 종일 이렇게 지낼 것이다. 그러나 내일이면 기억 속에서 흐릿해진 마리아나의 현실은 뒤전으로 물러 것이다. 세월은 그런 식으로 나의 생각을 비웃듯이 무시하며 지나왔다. 그렇게 하루 하루가 차례로 줄 서서 행진하듯 지나갈 것이고, 그러는 동안 아름답게 옷을 갈아 입는 가을은 번이고 다시 찾아 것이다. 같은 필름이 반복되어 돌아가듯이.

어느새 먼 훗날에 나타날 마리아나의 허상이 내 앞에 서 있다. 그리고 흐트러진 눈으로 나를 질타하듯 바라 볼 것이다. “아버지, 어떻게 합니까?” 마리아나를 생각할 때마다 절로 흘러 나오는 속상함으로 가득찬 한탄성의 기도다. 무숙자 선교의 가장 어려움은 변화 시킬 없는 상황 속에 처해 있는 이들을 향하여 소망없이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무능함이다.

아버지, 어떻게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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