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앎, 그리고 체험

선교사로 지낸지 벌써 4년을 맞이 했다.  세월의 빠름을 절감한다.  그리고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허락하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에 감사드리고, 기도와 물질적 후원으로 동역해 주신 여러 후원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루어졌다.  입이 열개라도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고백뿐이다.

하나님께서 니카라과에 선교사로 부르신 이유를 이제야 제대로 깨닫고 있다.  이곳에 선교를 이루시려고 나를 부르신 것도 아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룰 수없는 일이 무엇일까?     모세를 부르신 이유도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위해서가 아니였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하나님의 존재를 가르치고, 그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녕 여호와가 만유의 주시니라는 고백을 위함이었지 않는가?   하나님의 사랑의 지극하심과 능력의 크심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즉 모든 사건은 하나님 앎에 목적이 있다.  나에게도 하나님이 정녕 누구이신가를 알게 하기 위하여서 선교에 부르셨다는 고백을 한다. 

아는 만큼 깊어지는 신앙’(송인규 저)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는 믿는 것아는 것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협력하는 것이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믿음이라는 명목 아래 지적인 노력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 심한 경우는 반지성적인 신앙을 더욱 귀한 믿음의 신앙으로 부추기는 성향까지 없지 않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신앙의 위험에 대해서 경고한다.  지적인 앎이 없이는 자기 소견대로 성경 말씀을 이해하고 자기의 마음대로 살아가는 시대의 도래를 촉구 한다.  성경 말씀을 가지고 자신이 욕망하는 바을 덮어씌우려는 시도를 한다.  인간의 심성 속에 깊이 스며든 세속적인 가치들이 성경적 가치들과 혼합되어 교회의 순수성을  위협한다고 지적한다.

모든 신앙인이 마음에 깊이 두어야 할 지적이라고 본다.  우리는 감정에 매달려 있는 은혜만 쫓아 달려가던 길을 멈추어야 한다.  우리가 열심으로 달려가고 있는 길의 방향이 올바른가를 확인해야 한다.  확인의 방법은 말씀의 올바른 를 통한다.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의 열심은 도리어 위험하다.  열심의 강도가 높을수록 진리와는 더욱 멀리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은혜의 감정이 무익하다는 말은 아니다.  믿는 것아는 것에 균형을 찾아야 함을 말하고자 한다. 

그런데 믿은 것아는 것이외에 한 가지가 또 있다.  4년전에 선교로 불러내신 주님께서 나에게 한 가지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셨다.  믿는 것아는 것을 중간에서 연결해 주는 고리를 허락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삶이다. 체험은 믿는 것이 현실임을 알게 해 주고, 아는 것을 더욱 힘써 믿게 해 준다.  둘 중의 어느 하나만을 강화하거나 약화시키지 않는다.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풍성하심을 체험할 때, 좋으신 아버지를 더욱 알게 되고 알기를 원한다.  성경의 지식이 지적인 앎에서 체험적인 앎으로 변화된다.  그리고 그를 체험적으로 알면 알수록 좋으신 아버지를 더욱 의지하게 된다.  아버지를 향한 믿음의 크기가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체험을 통해서 전에는 보이지 않았고, 알지 못했던 새로운 깨달음이 생긴다.  그러면서 달려가는 목적지가 올바로 설정된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나를 그토록 사랑하는 아버지만을 향한다.  마치 탕자였던 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았을 때 그 아버지만을 향하여 나아갔듯이.

그래서 지난 4년간의 선교 생활을 그래서 기쁘고 감사하고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좋으신 우리 아버지의 축복이다.   앞으로도 체험적인 앎으로 더욱 사랑하게 될 우리 아버지를 향한 찬양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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