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결국은 부족한 나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3년 전 선교를 떠나면서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고, 니카라과 땅에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능력을 나누겠다는 생각이었다. 하나님을 위한 부르심이였고, 니카라과 백성들을 위한 순종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 속에 지난 3년 넘는 기간을 지낸 후의 결론은 예상 밖이었다. 이 선교는 다른 누구보다도 나를 위한 선교였다. 그리고 나의 유익을 위한 부르심이었다.

최초의 선교사라고 부를 수 있는 선지자 요나가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닌가 한다. 니느웨 성으로 부름을 받았고, 요나는 그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이 보내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을 못 마땅이 여겼기에 예상치 못한 여행의 경로를 통해서 니느웨 성에 이르러 억지로 복음을 전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선포한 후, 그 때까지도 못마땅해 하고 있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말씀해 주신다. 너의 불편을 덜어 주는 박덩쿨보다 12만의 생명이 더 귀하지 않느냐?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에 대한 설명, 그리고 선지자의 이기주의적인 관점을 지적해 주신다. 결과적으로 볼 때 요나의 선교는 선지자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요나를 위한 목적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처음부터 포함되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볼 때, 요나가 얻은 유익이 요나가 희생한 것보다 훨씬 많다. 그렇다면 요나를 위한 선교였다고 해도 큰 비약이 되지 않는다.

니카라과 선교도 마찬가지다. 내가 얻은 유익이 내가 희생한 것보다 훨씬 많다. 나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선교의 부르심은 다른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몇 가지로 유익을 생각해 보았다. 무엇보다도, 요나와 같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하심과 능력의 크심을 철저히 깨달아 알게 된 유익을 최고로 꼽을 수 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적 권유처럼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을 통해서 철저하게 확인했던 기간이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족하다고 할 정도로 얻은 유익이 크다. 선교의 크고 작은 사역을 이루어가는 과정 과정을 섬세하게 돌보시고 능력있게 이루어가시는 주님의 손길을 체험한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학교 사역으로부터, 무숙자 사역, 그리고 의료 선교 센타와 아동 사역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손길을 절절히 체험하며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과 능력, 그리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삶’을 배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며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더욱 의지하게 되고, 더욱 따르기를 원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안일하게 머물렀던 게을러진 나의 영혼을 깨워 회복시키고 주님과 더욱 사랑케 하셨다. 니카라과 선교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수양관이다.

둘째로 나에게 주신 유익은 인격적이 부분을 다루셨다. 나 자신 안에 있는 큰 이기주의적 자아를 보게 하셨다. 그리고 마치 커다란 돌덩이를 조각할 때 뭉텅뭉텅 돌 조각을 잘라내어 아름다운 모양을 만들듯이 나를 다듬어 주셨다. 무숙자들을 섬기면서 냄새나고 지저분하고 각종 병을 지니고 다니는 그들을 섬기면서 예수님을 섬기는 마음을 가지게 하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를 섬김을 기쁨으로 승화 시켜 주셨다. 자기 만족보다 더 큰 기쁨은 하나님 만족임을 배웠다. 구약의 시돈과 두로처럼 자신의 배만 살찌우는 삶의 자세를 슬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셨다. 높은 곳에 있는 자는 자신의 삶을 깎아서 낮은 곳을 메꾸어야 주님의 길이 예비됨을 삶으로 배우게 하셨다. 한끼를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사는 자들의 삶의 아픔을 보게 하셨고, 주문 외우듯이 해왔던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주님의 기도문의 진정한 의미와 그의 사랑를 발견했다. 나의 삶에 섬김 가운데 만족함을 누리게 되었다. 섬김은 이기주의적인 욕심이 가져오는 모든 영적, 정신적, 영적 질병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처방약이다. 내 자신의 이기주의적인 부분을 내려 놓는 연습은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자들에게 동전 하나를 거절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하루 하루 연습케하신다. 니카라과 선교는 하루 하루가 인격의 훈련장이다.

세째로 기도는 믿음에 달렸음을 깨닫게 하시고 믿음의 기도 속에서 주님의 풍성하심과 능력을 누리게 하셨다. 믿는 자에게는 무릎을 꿇는 것보다 더 큰 능력이 없음을 알고 주님을 더욱 의지하며 살게 되었다. 주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은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그리고 기도없이는 겸손해 질 수도 없음을 배웠고, 겸손없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없음도 깨달았다. 교만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도둑이다. 그렇기에 삶 자체가 기도가 되지 않으면 성령 하나님의 동행하심도 체험할 수 없다. 겸손이 없는 마음은 자신으로 가득 차 들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믿음의 기도는 극이 되는 개념으로 보이는 겸손과 능력을 함께 누리며 살게 하는 축복의 도구가 된다. 하나님의 풍성하심과 크신 능력의 통로되는 믿음의 기도를 날마다 배우며 살아간다. 니카라과는 기도처이다.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 이 부르심을 왜 마다 할까?
그래서 오늘도 마땅히 기쁨으로 감당한다.
아니,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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