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의 '밀레니움 개발 목표' 중간 발표를 읽은 후

(<--- 무숙자 사역에 찾아 오는 아이들 중에서)


유엔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만장일치되어 통과된 사안이 하나 있다. 2000년 새로운 밀레니움을 맞이하면서 체택한 MDG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라는 사안이다. ‘밀레니움 개발 목표’라고 일반적으로 불리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유엔에서 2000년, 새 밀레니움을 시작하면서 2015년까지 이루고자 하는 유엔의 공동 목표를 정해서 선포한 것이다. 8개의 목표를 정했다. 그 중에는 교육, 에이즈 퇴치, 여성의 권위 상승, 유아 사망율 감소, 환경 오염 등과 같은 목표들이 들어 있다. 그런데 그 중의 첫째가 빈곤 퇴치 (eradicate extreme poverty and hunger)이다.

배고픔은 인간으로 견디기 어려운 가장 큰 어려움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을 박탈하여 비굴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40일의 금식 기간 후에 마귀가 나타나서는 바로 이 배고픔의 고통을 해결하라고 시험 한다. 광야의 사십년 동안에 이스라엘은 배고픔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보내시어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셨다. 하나님도 배고픔의 고통을 인정해 주신 것이다. 이사야서에서는 종교적인 행위 중의 하나인 금식에 관하여 새로운 정의를 내리면서 배고픔의 고통 가운데에 처해있는 자들을 돌보는 것이 진정한 금식이라고 말씀을 하셨다. 광야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자들의 배고픔을 긍휼히 여기시어 오병 이어의 기적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육적인 배고픔은 영적인 공허함으로 쉽게 연결되어진다. 장기간 배고픈 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배고픈 자들은 하나님이 공평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불공평의 하나님은 믿지 않겠다고 거부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복음은 빵과 함께 주어져야 하는 것이고, 일반적으로 선교는 빵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물론 선교에서 ‘복음은 손님, 빵이 주인’이 되는 것이 문제이지만 말이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 배고픈 자들을 돌보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볍게 해 드리는 일이다. 인간의 배고픔은 하나님께서 가슴 아퍼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아버지가 자녀의 굶주림에 마음 아파하지 않으실까? 죄인된 인간인 우리들도 마음 아픈데, 온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오죽 하시랴? 그러니 배고픈 자들을 돌보는 일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이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배고픔을 무시할 수가 없다. 배고픔이 복음의 진보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간에 유엔에서 ‘밀레니움 개발 목표’에 대한 중간 발표가 있었다. 2007년 6월을 지냈으니 정확하게 15년의 반인 7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발표를 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목표에 달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멀고 먼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발도상국 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를 해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선진국들에는 부탁하는 분위기, 문제를 가지고 있는 후진국들에게 권면의 분위기를 잃지 않았다.

그 중에 니카라과에 대한 내용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니카라과의 사회학자 오스카르 바르가스의 연구에 의하면 지난 16년간 니카라과의 빈곤층이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82프로의 국민인 4백 2십만이 아직도 빈민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절반 가량인 2백 1만, 즉 국민의 41프로 가량이 극빈 생활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발표를 했다. 반면에 나라의 5프로인 약 25만의 사람들이 부의 40프로 이상을 차지하는 부의 불균형이 뚜렸하다. 그와 함께 실직율이 45프로 이상이라는 걱정스러운 발표가 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새로운 사회주의 정부 출범 이후 경제 활동이 도리어 위축되고 있다는 보고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위험한 차길에 서서 구걸하는 아이들이 부쩍 늘었다. 배고픔을 삶의 일부로 받아 드리고 사는 나라. 어려서부터 먹지 못해서 키 큰 사람을 찾아 보기 힘든 나라. 받는데 너무 익숙한 나라. 하루에 한끼만 먹고 사는 사람이 많은 나라. 온 가족이 함께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나라. 살기 위해서 어린 자식들에게 비럭질을 가르쳐 위험한 차길로 내보내는 나라. 젊은 청년들이 학교도 직장도 가지 않는 나라. 국민 평균 교육 수준이 국민학교 4학년인 나라….. 이러한 것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사탄의 역사다. 예수의 영이 없음으로 말미암은 결과이고, 말씀이 흥왕하지 못했기에 일어난 결과이다. 역사적으로 장기간 동안 영적인 강간을 당한 모습이기도 하다. 서구의 문명이 길거리에 서 있는 창녀의 모습이라고 하면, 니카라과의 모습은 강간 당하고 버려진 후 고통 속에 신음하는 여인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예수 이외에는 다른 방법으로 소망이 주어질 수 없다.

유엔의 밀레니움 개발 목표도 박수 칠만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을 직시해야 한다.
주님, 이 백성을 배고픔에서 구원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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