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선교팀과 함께 한 여름을 감사하며
*** (단기 선교팀과 함께 세우는 교회의 모습) 이제 8월을 마치면서 바쁘게 지냈던 여름을 돌아 살펴 본다. 방학을 맞이하여 찾아 준 선교팀을 맞이하여 함께 사역을 하느라고 바쁘게 지냈다. 그래도 3년을 지낸 베타랑(?) 선교사라고 올해는 예년 보다 많은 선교팀이 찾아 주셨다. 선교사라고 나를 믿어 주고 찾아 와 주신 선교팀과 보내 주신 교회와 목사님들께, 그리고 함께 동역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선교팀을 받으면서 오래 전에 우리 나라에 오셨던 선교사님들을 생각해 볼 때가 가끔 있었다. 그 때에는 교통 수단이라고는 화물 운송선 뿐이던 때이다. 한번 고국을 떠나면 몇 년이고 돌아 올 수 없었던 때고, 찾아 오는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던 때이다. 그나마 편지 한번 보내면 몇 달이라는 기간이 걸려야 답장이라고 겨우 받아 볼 수 있었던 때를 생각해 본다. 그 선교사님의 외로움은 어떠했을까? 부인 선교사님들의 외로움과 고통은 어떠했을까? 한국 기독교 유적지는 역사가 짧은 만큼 많지 않다. 많지 않은 유적지 중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 많은데, 그 중에 하나가 ‘지리산 선교사 수양관’라는 유서 깊은 곳이다. 지리산 깊숙한 곳에 선교사 수양관이 세워진 이유를 알면 우리 나라에 오셔서 복음을 전해 주신 선교사님들의 헌신과 희생과 고통을 조금은 느껴 볼 수 있다. 외국의 선교사들이 우리 한국 백성을 위하여 한국 땅에 와서 목숨을 바쳐가며 복음의 진보를 위하여 일했음을 증명하는 곳이다. 예전에 우리나라에는 여름철이 되면 학질과 말라리아, 그리고 이질과 같은 전염병이 돌았다. 그리고 이런 병으로부터 희생되어지는 선교사와 자녀들이 생겼고, 이 무서운 질병에 대해 선교사들이 세운 대책이 바로 지리산 선교사 수양관이다. 바로 그러한 전염성 질병으로부터 여름 동안 가족을 피신 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인적이 드문 지리산 깊은 산골을 택했던 것이다. ‘지리산 선교사 수양관’은 말이 수양관이지 사실은 죽음을 각고하고 들어 온 선교사들과 그 가정의 희생과 헌신을 증명하는...